- 기자, 한상미
- 기자, BBC 코리아
2024년 2월 15일
한국이 쿠바와의 수교를 전격 발표했다. 이로써 중남미 국가 중 유일한 미수교국이던 쿠바는 한국의 193번째 수교국이 됐다.
지난 14일 늦은 밤, 미국 뉴욕에서 양국 주유엔대표부가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에 합의했다는 소식은 예고 없이 깜짝 발표됐다. 쿠바 외교부도 14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한국과의 외교 및 영사 관계 수립을 공표했다. 쿠바는 특히 이번 수교가 "유엔 헌장의 목적과 원칙, 국제법, 그리고 외교 관계에 관한 빈 협약에서 확립된 정신과 규범에 따라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양국의 수교 협의는 그간 극도의 보안 아래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논의 진전 상황은 극비리에 부쳐졌으며 특히 한국의 설 연휴 기간에 협의가 급진전 된 것으로 알려졌다.
쿠바는 지난 1949년 한국을 승인한 바 있다. 하지만 1959년 쿠바의 사회주의 혁명 이후 두 나라 간 교류는 단절됐다. 그리고 지난 2016년 박근혜 정부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쿠바를 방문해 양국 간 첫 공식 외교장관 회담이 열렸지만, 수교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양국은 향후 공관 개설 등 수교 후속 조치를 위해 적극 협의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형제국' 북한, 어떤 반응 보일까
한-쿠바 수교는 국제사회에서 갈수록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는 북한의 외교적 고립을 재확인하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결정타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BBC에 “북한이 현재 대사급을 서로 주고받는 나라가 6개인데, 그 중 하나가 쿠바”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특히 “남북관계-북미관계 고착 이후 김정은 위원장이 선언한 신냉전 외교의 핵심은 중국-러시아와의 관계 강화, 그다음이 다른 사회주의 국가와의 관계 확대”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형제국’이라 불리는 쿠바가 북한 몰래 한국과 극비리에 수교를 했다는 사실은 북한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큰 상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가정보원 대북분석관을 지낸 곽길섭 원코리아센터 대표 역시 “올해 북한의 목표는 북중러-한미일 신냉전 구도를 형성하고 사회주의 국가들과 연대한 ‘반미’ 투쟁을 확산시키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진영외교에 있어 중국과 러시아에 최대 중점을 두면서 실질적으로 성과를 보이고 있는 만큼, 타격이야 있겠지만 한-쿠바 수교에 거센 항의나 대사 초치 등의 공식 행보를 보이지는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외교적-상징성 측면에서 북한에게 쿠바의 존재는 중국 다음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세습 정권인 북한에게 전통의 동맹 관계는 훨씬 더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김인태 책임연구위원은 “북한 입장에서는 허를 찔린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물론 북-쿠바 관계의 절정은 김일성 시대였고 이후 쿠바가 개혁개방을 추구하면서 당대당 외교가 약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념’과 ‘전통성’을 유지하고 있었던 만큼 이번 한-쿠바 수교가 북한에게 결정타가 된 것은 확실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북한 당국이 내부적으로도 관련 내용을 공식화하기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며 “권력층이나 주민들이 이런 사실을 알아서 북한 정권에 좋을 게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뒤통수 맞은 북한?
쿠바는 북한의 ‘형제국’으로 불린다. 때문에 한-쿠바 양국은 북한의 반발과 방해 공작 가능성 등을 감안해 물밑에서 비밀리에 협상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과 쿠바는 1960년 8월 29일 수교했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에 성공한 지 1년 만이다. 이후 양국은 냉전 시기 ‘반미’와 ‘사회주의’란 공통분모 아래 긴밀히 교류해왔다.
실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체 게바라(1960년)를 비롯해 라울 카스트로(1966년), 피델 카스트로(1986년) 등 쿠바의 주요 인사들이 환대 속에 북한을 방문했다. 또한 북한이 핵 개발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돼 가던 2018년에도 미겔 디아스카넬 당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평양을 찾아 김정은 위원장과 대면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쿠바의 대통령이다.
북한 역시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 1월 1일 디아스카넬 대통령에게 쿠바 혁명 65주년을 축하하는 장문의 축전을 보냈다. 김 위원장은 축전을 통해 "사회주의 위업의 승리를 위한 공동투쟁 속에서 맺어진 두 당 두 나라 사이의 전통적이며 동지적인 친선협조 관계가 앞으로 더욱 공고 발전되리라는 확신"을 표명했다.
하지만 한-쿠바 수교 논의가 극비리에 부쳐진 만큼, 북한은 이러한 상황을 막판까지도 몰랐을 것으로 여겨진다. 한국 정부 고위 관계자는 수교 발표 뒤 "북한이 수십 년 동안 수교를 방해해 왔으니 이번에 전격적으로 빨리 발표한 것"이라며 "쿠바가 한국과의 경제 협력이나 문화 교류에 목말라 있었던 만큼 북한에 알리지 않고 수교하고 싶어 한 듯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곽길섭 대표는 “한국 정부가 쿠바에 끊임없이 노크해온 끝에 양국이 수교를 맺게 된 것은 결국 국가 이익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이 그만큼 경제적, 문화적으로 쿠바에게 매력적인 국가로 어필했다는 얘기다.
실제 최근 쿠바 현지에서 한국 드라마와 K팝 등 한류가 큰 사랑을 받으면서 규모 약 1만 명의 한류 팬클럽도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곽 대표는 “쿠바 입장에서도 북한이나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를 크게 훼손치 않으면서 전방위 외교를 펼칠 필요성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한-쿠바 양국의 니즈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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